성경 주석 - 베드로전서 5:1~14 호크마 주석


성 경: [벧전5:1]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장로에게 주는 교훈]
󰃨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 지금까지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 즉 사환(2:18), 아내들(3:1), 남편들(3:7), 모든 사람들(3:8)에 대한 권면이었으나 본절은 장로들에 대한 권면이다. '장로'(*, 프레스뷔테루스)는 구약 시대부터 시작된 호칭이다(출 3:16,18; 24:9; 민 11:16; 수 20:4). 구약 시대에는 주로 나이가 많은 연장자들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되었으나 점차적으로 직분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예루살렘 교회가 장로 제도를 사용하였으며(행11:30; 21:18) 바울과 바나바는 전도 여행을 하면서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웠다(행14:23). 따라서 이 제도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여러 지역으로 번져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장로'는 '감독'(*, 에피스코포스) 과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딤전 3:1; 딛 1:7). 그러나 감독은 직분적인 측면의 성격이 강하며, 장로는 신분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와 같은 장로는 교회에서 전반적인 것을 관리하는 영적 지도자로서 교인들을 양육하고 돌보며 인도하는 일을 감당하였다(히 13:7;약 5:14, Blum, Stibbs, Selwyn). 한편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권면할 수 있는 자신의 자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함께 장로 된 자요 - 이것은 베드로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동역자임을 강조하는 주장이다. 이는 결코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훈계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며 자신도 '장로'로 같은 '장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함을 시사한다(Brown). (2)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 이것은 베드로 자신이 직접 그리스도의 고난을 목격한 증인이요(행 5:32; 10:39), 그것을 증거할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임을 의미한다(요 21:15 - 18; 행 1:8). (3)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 '나타날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보여 주실 영광이며(4:13) 동시에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누릴 영광이다(롬 8:17, 18). 혹자는 본절의 영광이 변화산상에서 베드로가 목격한 영광을 지칭한다고 하나(Stibbs) 그것보다는 장차 임할 미래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성 경: [벧전5:2]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장로에게 주는 교훈]
󰃨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 베드로는 요 21:15 - 17에서 예수께서 자신에게 부탁했던 말을 다른 목자들 즉 장로들에게 권면한다. 본래 '양'은 그리스도의 것이며(요 10:14; 21:15), 하나님의 것이다(행 20:28). 그런데 목자장이 되시는그리스도께서 양 무리를 돌보는 직임(職任)을 사람들에게 위임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양 무리'를 돌보고 양육하는 직임을 다하라고 장로들에게 권면한다. 장로들은 이 때 두 가지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 (1)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 '부득이함으로'의 헬라어 '아낭카스토스'(*)는 '자원함으로'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억지로'를 의미한다. 일부 영역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 빠져 있는데(KJV) 그러면 뒤에 나오는 '자원함'을 설명할 수 없다. 장로들은 주어진 직임을 행할때 인간적인 열심이 아니고 성령께서 주신 마음으로 즉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열심으로 행해야 한다(행 20:28). (2)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 본절은 당시의 장로직에 일정한 보수가 있었음을 암시한다(딤전 5:17, 18). '더러운 이'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들에게 맡겨진 공동체의 재정을 이용하는 행위이며(Kelly), '즐거운 뜻'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뒤모스'(*)는 헌신적으로 열심을 내는것을 가리킨다. 장로들은 자신의 사리 사욕을 채우기 위해 공동체의 재정을 이용하거나 돈을 목적으로 직임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성 경: [벧전5:3]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장로에게 주는 교훈]
󰃨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 본절 역시 앞절과 마찬가지로 장로가 직임을 감당할 때 취해야 할 마음 자세에 대한 언급이다. '맡기운 자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레론'(*)은 본래 '제비 뽑기'란 의미의 '클레로스'(*)에서 나온 단어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들어갔을 때 제비 뽑기를 하여 땅을 할당 받았던 것에서 유래한다(수 18:10). 그래서 '클레론'은 '분배', '몫', '할당' 등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막 15:24; 행 1:26), 본문에서는 레위인에게 할당한 기업처럼 신성한 은혜에 의한 '몫'이다(민 3:12). 한편 '주장하는 자세'는 권세를 가지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 무리는 하나님의 것이고, 장로 직임은 하나님의 은혜로 맡겨진 것이기 때문에 장로들은 지배를 하거나 다스리는 자세로 양 무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겸손한 마음과 신성한 모습으로 모범을 보여서 양을 양육하고 돌봐야 한다.

성 경: [벧전5:4]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장로에게 주는 교훈]
󰃨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 신약성경에서 단한번 나오는 '목자장'(*, 아르키포이메노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는 '목자'로 불리어졌으나(2:25) 본절에서는 장로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목자장'으로 사용되었다(Deissmann). 모든 양들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는 '큰 목자'요(히 13:20) '선한 목자'(요 10:11, 14)이시며 베드로를 포함한 장로들은 목자장이신 예수의 '대리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대리 목자들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서 적합한 보상을 해주실 권리가 있다. 그것의 상급은 '시들지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이다. '시들지 아니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마란티논'(*)은 '아마란티노스'라는 절대로 시들지 않는 꽃 이름에서 나온 단어로 '쇠하지 않음'을 상징하며(Robertson) '면류관'은 운동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월계관'을 가리킨다. 직임을 잘 감당하는 장로들은 그리스도로부터 합당한 상급으로 영원히 쇠하지 않는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롬 8:17, 18; 요일 3:2).

성 경: [벧전5:5]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장로에게 주는 교훈]
󰃨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 본절에서는 '장로'를 1절에서 처럼 굳이 '직분자'로 해석하거나, '젊은 자'(*, 네오테로이)를 '성직자'나 '집사'들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네오테로이'가 성경에서 직분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의 '장로'는 단순히 '연장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Kelly, stibbs, Blum). 젊은 사람들이 연장자에게 순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땅한 질서이다. 한편 '허리를 동이라'의 헬라어 '엥콤보사스데'(*)는 '옷 입다'라는 의미로 노예들이 주인을 시중들기 위하여 앞치마를 두르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께서 수건으로 앞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을 상기시키는 권면으로(요 13:14 - 17)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 본절은 잠 3:34(LXX) 의 인용으로 겸손해야 하는 이유이다. 젊은 자들이 장로들에게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대적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티탓세타이'(*)는 군대를 배치시킬 때 사용하는 군사 용어였다(Caffin).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교만하여 자기의 능력만을 믿는 자들을 대적하셔서 파멸시키신다. 반면에 겸손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허락하신다.

성 경: [벧전5:6]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회중에 대한 권면]
󰃨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 '하나님의 능하신 손'은 구약 시대에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실 때에 종종 사용되었던 표현이다(출 3:19; 6:1; 13:3; 신 9:26; 렘 21:5). 베드로는 '겸손'과 '높임'을 대조시켜서 현재에 받는 어려운 고난을 통해 겸손할 때 장차 그리스도의 때 곧 재림의 때가 되면 거룩한 자리에 참여하게 되는 영광으로 바뀌게 될 것을 권면한다.

성 경: [벧전5:7]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회중에 대한 권면]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 본절은 시55:23(LXX)의 인용이다. '염려'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림난'(*)은'나누다'라는 의미의 '메림나'(*) 에서 유래한 단어로 악한 자들로부터 받는 핍박 뿐만 아니라 내면에 있는 여러 가지 걱정이나 고민 등을 의미한다(마6:25 - 34).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염려를 다 그리스도께 맡겨야 한다. '맡겨 버리라'의 헬라어 '에피립산테스'(*)는 '던져버리다'라는 의미로 부정 과거 분사형이나 본절에서는 새로운 명령형 형태를 취하지 않고 6절의 명령법과 연결되어 강조되고 있다(Kelly). 이것은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는 자들이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항상 보호하시는 손에 염려를 맡겨야함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권고하시기 때문이다. '권고하심이니라'의 헬라어 '멜레이'(*)는 '돌보다', '관심을 갖다'라는 의미로 '염려가 그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돌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걱정과 외부로부터 오는 위험을 맡겨야 하며 그때만이 평강을 소유하게 된다.

성 경: [벧전5:8]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회중에 대한 권면]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깨어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레고레사테'(*)는 '깨어 있다'라는 의미인 '에게이로'(*) 에서 유래된 단어로 잠에서 깨어있는 상태뿐만 아니라 영적인 경각심을 갖도록 할 때 또는 권고나 주목을 요청할 때 사용되었다(마 26:40, 41; 막 13:35 - 37, Lenski).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할 이유는 대적 마귀가 삼킬 자를 찾아 다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귀'(*, 디아블로스)는 '비난하는 자' 곧 '사단'을 가리킨다(대상 21:1; 욥1:6- 12; 슥 3:1). 베드로는 '마귀'를 배고픈 사자로 비유하여 사단의 유혹이 강력함을 시사한다.

성 경: [벧전5:9]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회중에 대한 권면]
󰃨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 '굳게 하여'(*, 스테레오이)는 '흔들리지 않는 반석같은 단단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원래 마귀를 대적하는표현으로 많이 사용되었다(Selwyn). 본문에서도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믿음을 반석처럼 견고하게 세울 것을 권면하는데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그리스도를 터로 하였을 때 굳건히 설 수 있으며 굳건한 믿음의 소유를 통해서 마귀를 강력히 대적 할 수 있다(약 4:7). 이는 죽음의 위협에서도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죽기를 각오하고 적극적으로 싸울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Kelly).
󰃨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 '세상'은 성경에서 사용되었으나 본문에서는 '사람이 사는 보편적인 우주'를 지칭한다(Kelly). 또한 '형제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표현이다(1:22; 2:17; 3:8).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동일한 몫의 고난을 당한다(Kelly). '당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텔레이스다이'(*)는 '완성하다'를 뜻하는 '에피텔레오'(*)에서 나온현재 진행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이세상에서 계속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시사한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수 많은 고난 가운데 처하게 되지만 그 고난을 통해 보다 완전한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성 경: [벧전5:10]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회중에 대한 권면]
󰃨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 - 베드로는 본절에서 모든 권면을 마치고 위로의 힘을 얻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행하시는 일에 대해 언급한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란 표현은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소망의 위로가 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모든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특별한 도우심으로 은혜를 베푸심을 암시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먼저 '그리스도 안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시는 사역에서 시작된다. 그 부르심의 목적은 영원한 영광 즉 궁극적인 구원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 안에서'의 헬라어 '엔 크리스토'(*)는 바울이 잘 쓰는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시는 것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었음을 시사한다.
󰃨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 '잠깐 고난'은 장차 온전한 구원의 완성을 의미하는 '영원한 영광'과 대조를 이룬다. 이 세상에서 잠시 동안 겪는 고난은 그것을 참고 견디어 소유하게 되는 영원한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4개의 동사를 나열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확증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확실한 개입에 의하여 이루어 지는 것이다(Selwyn, RV).
󰃨 온전케 하시며 - 이것은 '완전케하다'를 뜻하는 것으로 본문에서는 박해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시사한다(고전 1:10; 고후 13:11).
󰃨 굳게 하시며(*, 스테릭세이) - 이는 '어떤 박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견고하게 하는것'(살후 2:17)을 나타낸다.
󰃨 강하게 하시며(*, 스데노세이) - 이는 자율적으로 봉사하도록 무장시킨다는 의미로서(Masterman) '굳게 하다'의 동사와 뚜렷한 구별을 할 수 없는동사이다.
󰃨 견고케 하시리라(*, 데멜리오세이) - 이는 확고한 신앙의 터전 위에서 요동치 않도록 하는 것을 나타낸다(Bengel).

성 경: [벧전5:11]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회중에 대한 권면]
󰃨 권력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 이런 송영은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많이 사용되는 형태이며(4:11) 그리스도의 교훈(마 5:16), 바울서신(롬 11:36; 16:27;갈 1:5; 딤후 4:18), 공동서신(2:12; 히 13:21; 벧후 3:18), 묵시서신(계 1:6; 5:13)등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권력'의 헬라어 '크라토스'(*)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사용된 단어로 온 우주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의미한다(Stibbs).

성 경: [벧전5:12]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문안과 축복]
󰃨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 '실루아노'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서 12절에서 14절까지는 사도 베드로의 친필인 것을 말해준다. '실루아노로 말미암아'의 표현은 실루아노가 본 서신의 대필자임을 분명히 해준다. 그는 '실라'라고도 하며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때 동행했던 자이다(행 15:22- 33; 15:40; 18:5). 그리고 바울의 서신에서도 '실루아노'라고 불리었다(Selwyn). 실루아노가 베드로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으나 베드로 전 후서 를 기록하는데 큰 공헌자였을 것이다. 베드로는 '실루아노'를 '신실한 형제'라고부른다. '신실한 형제'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 피스투 아델푸'(*)는 정관사로 연결되어서 수신자들이 실루아노에 대해 잘알고 있음을 시사한다(Stibbs).
󰃨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 본서의 주요한 특징은 권면이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권면한 모든 것이 '은혜'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베드로가 이제까지 권면한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삶 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며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은혜 안에서 뿌리를 내려야 흔들림이 없이 굳게 설 수 있는 것이다.

성 경: [벧전5:13]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문안과 축복]
󰃨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의 헬라어 '헤 엔 바뷜로니 쉬네클레크테'(*)는 문자적으로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그 여자'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그 여자'란 누구인가? 에 대한 견해는 두가지이다. (1) 혹자는 베드로의 아내라고 주장한다(Stibbs). 왜냐하면 베드로는 전도여행에 아내를 데리고 다녔었기 때문이다(고전 9:5, Clement). (2) 혹자는 '바벨론에 있는 교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enski, Kelly, Blum). 이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헬라어로 교회는 여성 명사이기 때문이다. 만약 베드로의 부인이었다면 구체적으로 이름을 열거하였을 것이고 또한 고대의 사본에는 교회라고 직접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바벨론'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 이다. (1) 혹자는 베드로가 가서 전도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있는 실제 '바벨론'이라고 주장한다(Calvin). 그러나 베드로가 그곳에서 전도를 했다는 정확한 근거가 없고 초대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음이 확실하기 때문에 타당성이 없다. (2) 혹자는 '애굽의 한도시'라고 주장한다(Strabo, Josephus). 그러나 베드로가 이곳을 방문했다는 확실한 근거가 희박하고 기독교가 초기에 이곳에서 발전했다는 자료도 없다. (3) 혹자는 '로마'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enski, Stibbs, Kelly, Blum). 바벨론은 세상을 상징하는 은유적 표현으로서 로마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 베드로는 마가를 '아들'이라 부르고 있다. 초대 전승에 의하면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떠난 후에 베드로의 동역자가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 이라고 한것은 바울이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로(딤전 1:2;딤후 1:2) 친아들이 아니라 영적인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베드로의 영적 아들인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로서(골 4:10) 본명은 마가 요한이다(행 12:12,25). 그는 바울의 제 1차 전도 여행 때 동행했으나 제 2차 전도 여행때는 동행하지 않았다(행 13:5;15:37-39). 그러나 후에 바울이 투옥되자 시중을 들었었다(골 4:10; 몬1:24).

성 경: [벧전5:14]
주제1: [마지막 권고와 인사]
주제2: [문안과 축복]
󰃨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 이러한 표현은 바울 사도가 주로 사용한 표현이다(롬 16:16; 고전 16:20; 고후 13:11; 살전 5:26). '입맞춤'은 초대 교회에서 사용되었던 인사법으로(눅 7:45, Justin, Tertullian, Chrysostom) 2세기 경까지 지속되었다. 3세기 이후에는 남녀가 구분되어 행해졌으나(TDNT)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평강이 있기를 기도함으로 서신을 끝맺는다. '평강'(*, 에이레네)은 히브리인의 인사말로서 '샬롬'(*)과 같은 것으로 본 서신은'평강'으로 시작해서(1:2), '평강'으로 끝을 맺는다. 이 '평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과 관련된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할때 소유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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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카르타 한국교회
Jogja Korean Community Church
족자카르타 한국교회는 한국인 교포, 유학생, 여행자 뿐만 아니라 한국어 예배를 드리기 원하는 인도네시아인들과 함께 하는 개혁주의 신앙 위에 세워진 말씀과 선교의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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